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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독일어로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뜻인데 영어로나 한국어로는 적절한 표현이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정도로 이해된다. 니체는 ‘사람을 무는 뱀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크게 기뻐한다. 아무리 저급한 동물도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기쁨을 상상하면서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동물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타인의 행운을 그저 축하하는데 끝내지 않고 그들의 기쁨을 함께한다는 것은 일종의 공감이다. 니체가 말하는 미트프로이데(Mitfreude)가 바로 ‘함께 기뻐하기’이고 이는 샤덴프로이데의 정반대 개념이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제10장에서는 시기심을 다룬다. 시기심은 인간 본성의 하나로 분노, 나르시시즘과 함께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시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원래 욕구의 동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욕구를 지니고 태어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더 나은 사람,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많은 재물을 갖고 싶고 채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옆집 잔디가 더 파랗게 보인다. 자신보다 잘 나가거나 뛰어난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이미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시기심이다. 시기심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동반되기에 큰 고통이 따른다. 이 시기심은 인간관계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사람 중에는 특히 시샘을 많이 내는 유형이 있다. 시기하는 사람의 공격을 일찍 알아채서 피해 가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시기심 많은 친구 하나로 오랫동안 당신의 영혼이 병들고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도 자신보다 어리고 재능있는 라파엘로를 시기해서 그의 명성을 더럽히고 그가 의뢰받는 것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했다면 믿겠는가. 나도 30대였을 때 시기심이 발동해서 끙끙 앓았던 기억이 하나 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딸의 친구네는 남편 혼자 돈을 벌고 애 엄마는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벤츠에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여유가 있게 살고 있었다. 나는 평생 일을 하면서도 남편한테 절약 또 절약해야 애들 대학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저지했다. 알고 보니 그 애 엄마는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나는 더욱더 화가 났었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과 비교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을 보면 긴장하고 시기심을 느낀다. 이 감정은 작게는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폐증까지 유발하며 크게는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해를 가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비교하고 시샘하는 인간의 성향을 서서히 뭔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친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몇 가지 현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먼저 당신이 시샘하는 것에 가까이 가서 그들이 보여주는 반짝거리는 앞면 말고 뒷면을 보도록 하여라. 분명 자신이 위안받을 무엇인가를 찾게 될 것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의 태도는 시기심을 없애는 가장 좋은 약이다. 감사하는 태도는 운동이 필요한 근육과 같아서 자주 써주지 않으면 위축이 된다. 마음을 열어 상대를 시기심이 아닌 본보기의 대상으로 삼으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는 또한 인간의 위대함에 경탄하라고 한다. 누군가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만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잠재력을 키우는 일이다.     행운을 가진 자를 시기하지 않고 사랑하고 축하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공이나 성취와 무관하게 살면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schadenfreude 분노 나르시시즘 천재 조각가 로버트 그린

2022-12-26

[삶의 뜨락에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이 단어는 독일어로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뜻인데 영어로나 한국어로는 적절한 표현이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정도로 이해된다. 니체는 ‘사람을 무는 뱀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크게 기뻐한다. 아무리 저급한 동물도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기쁨을 상상하면서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동물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타인의 행운을 그저 축하하는데 끝내지 않고 그들의 기쁨을 함께한다는 것은 일종의 공감이다. 니체가 말하는 미트프로이데(Mitfreude)가 바로 ‘함께 기뻐하기’이고 이는 샤덴프로이데의 정반대 개념이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제10장에서는 시기심을 다룬다. 시기심은 인간 본성의 하나로 분노, 나르시시즘과 함께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시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원래 욕구의 동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욕구를 지니고 태어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더 나은 사람,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많은 재물을 갖고 싶고 채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옆집 잔디가 더 파랗게 보인다. 자신보다 잘 나가거나 뛰어난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이미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시기심이다. 시기심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동반되기에 큰 고통이 따른다. 이 시기심은 인간관계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사람 중에는 특히 시샘을 많이 내는 유형이 있다. 시기하는 사람의 공격을 일찍 알아채서 피해 가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시기심 많은 친구 하나로 오랫동안 당신의 영혼이 병들고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도 자신보다 어리고 재능있는 라파엘로를 시기해서 그의 명성을 더럽히고 그가 의뢰받는 것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했다면 믿겠는가. 나도 30대였을 때 시기심이 발동해서 끙끙 앓았던 기억이 하나 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딸의 친구네는 남편 혼자 돈을 벌고 애 엄마는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벤츠에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여유가 있게 살고 있었다. 나는 평생 일을 하면서도 남편한테 절약 또 절약해야 애들 대학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저지했다. 알고 보니 그 애 엄마는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나는 더욱더 화가 났었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과 비교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을 보면 긴장하고 시기심을 느낀다. 이 감정은 작게는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폐증까지 유발하며 크게는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해를 가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비교하고 시샘하는 인간의 성향을 서서히 뭔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친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몇 가지 현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먼저 당신이 시샘하는 것에 가까이 가서 그들이 보여주는 반짝거리는 앞면 말고 뒷면을 보도록 하여라. 분명 자신이 위안받을 무엇인가를 찾게 될 것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의 태도는 시기심을 없애는 가장 좋은 약이다. 감사하는 태도는 운동이 필요한 근육과 같아서 자주 써주지 않으면 위축이 된다. 마음을 열어 상대를 시기심이 아닌 본보기의 대상으로 삼으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는 또한 인간의 위대함에 경탄하라고 한다. 누군가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만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잠재력을 키우는 일이다.     행운을 가진 자를 시기하지 않고 사랑하고 축하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공이나 성취와 무관하게 살면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schadenfreude 분노 나르시시즘 천재 조각가 로버트 그린

2022-12-16

[기고] 시샘, 우리들의 어두운 본성

“도공은 도공과 원한을 맺고, 공예사는 공예사를,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샘한다." 헤시오도스(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시인)   맞는 말이다. 내가 빌 게이츠를 시샘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경쟁의식을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조지가 생떼를 부린다. 전날 롤랜드가 극심한 난동을 피웠던 일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주사를 놓는 병동 직원들의 관심을 자기도 받고 싶다는 것. 조지와 롤랜드는 썩 좋은 사이가 아니다. 간간이 서로 트집을 잡고 주먹다짐도 한다. 그들의 불행은 시기와 질투에서 출발한다.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자매는 차갑고 모질고 악질적이다. 콩쥐팥쥐의 팥쥐도 저질의 극이다. 유교의 '칠거지악(七去之惡)', 가톨릭의 '7개 대죄(Seven Deadly Sins)'에서도 질투와 시샘이 두각을 나타낸다.   아담과 이브의 아들, 카인과 아벨은 어떠했는가. 야훼께서 곡식을 예물로 바친 카인보다 양 떼 가운데서도 ‘맏배의 기름기'를 골라 바친 아벨의 예물을 더 반기셨다는 기록은 불가사의한 데가 있다. 카인은 질투에 몸을 떨며 동생 아벨을 들로 데리고 가서 돌로 때려죽인다.   시샘 당하는 일은 공격 받는 일이다. 겸손의 미덕은 시기의 표적을 피하기 위함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든 수상자가 나열하는 ‘Thank you!'의 연발은 자신의 공을 남의 은덕으로 대치하는 작업이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 받는 사람들 사이에 기쁨과 환희가 넘쳐 흐르고 질투 어린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로버트 그린의 저서에 ‘인간 본성의 법칙(원제: The Laws of Human Nature)'이 있다. 저자 그린은 인간의 본성 중 나르시시즘을 위시한 여러 어두운 면을 가차 없이 파헤친다. 우리가 모두 얼마나 허술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고 남들의 관심사가 되고 싶다. SNS에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 다듬어진 글, 경치, 꽃, 명화, 좋은 접시에 담긴 음식 등을 보라. 당신도 나도 부지불식간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가.   로버트 그린은 우리가 시샘으로 괴로울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보다 안 잘난 사람을 생각하며 위안을 받는 디펜스가 통할 때가 많다. 남의 우수성을 본보기로 삼아 자기를 발전시키고 승화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도 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접근하는 기법도 유효하다. 부러운 여건과 상황은 그의 일부분일 뿐, 잘 보면 그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측은지심이 솟고 모종의 공감 현상이 일어나면서 시샘이 사라진다.   오래전에 ‘envy'가 ‘envision'과 말의 뿌리가 같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이제 그와 달리 ‘envy'가 ‘in'과 ‘vie, 경쟁하다'가 합쳐진 단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vie'는 16세기경 도박에서 상대방에게 도전한다는 뜻이었고 이 말은 또 ‘invite, 초대하다'와 같은 어원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초대는 응당 도전의식을 겸비한다.   스포츠맨 정신은 건전한 도전과 다툼이다. 시기심은 동종 경기에서만 발생한다. 정치인은 권투 선수를 시샘하지 않고 정치가를 시기한다. 국가는 국가를, 종교는 종교를 선망하고 질투한다. 저급한 이념이 월등한 이념을 음으로 양으로 물어뜯는다.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기고 시샘 본성 시샘 우리들 인간 본성 로버트 그린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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